“동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6월 17일 건설노동자 양회동열사 범시민추모제>형 양회선씨의 추도사 전문
오늘따라 엄마가 무척이나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서른아홉살 젊디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칠남매를 당신 피와 땀으로 키우신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막내인 동생을 엄마젖도 제대로 먹이지 못해 가슴 아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어린 자식들 먹이는 것이 먼저라서 어머니께서는 제대로 드시지 못해 막내한테 먹일 젖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동네 이곳저곳에서 젖동냥을 하면서 100일도 안된 동생을 키웠습니다. 동네 사람들 중에는 키우기 힘드니까 막내는 입양시키라고 말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악착같이 일해서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어머니는 얼마나 고달프고 힘이 드셨을까.
지금도 어머니 마음 다 헤아리지는 못해도 어린 시절 떠올리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힘들게 살았어도 어머니께서는 저희에게 가난하게 살아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칠남매중에서 동생이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삶을 희생하셨고 동생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억울하게 구속되신 모든 분들도 함께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창피했으면 우리 곁을 떠났을까요? 이렇게 안타깝고 가슴아픈 동생의 죽음마저도 왜곡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계속 이렇게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저희 유가족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저희같이 이런 슬픔과 고통 다시는 일어나면 안됩니다. 멈출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사과와 반성을 커녕 동생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 동생과 유가족들에게 2차, 3차 가해도 서슴치 않고 자행하고 있습니다.
원희룡 장관 똑똑히 들으십시오. 6월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렇게 답변했지요. 아직도 의구심이 든다고? 그럼 묻겠습니다. 최근 강릉 법원 앞 직접 가보기는 했습니까. 동생이 있던 화단 안쪽과 동료와의 거리, 화단넓이, 높이 똑똑히 확인했습니까? 라이터를 들고 가까이 오지 말라는 동생의 목소리, 함께 있던 기자님도 같이 들었고 만류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도 그 순간, 멈칫거릴 수도 있을텐데 동료한테 왜 화단을 넘어가서 막지 못했냐고 그 순간 두려움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한테 그럼 뛰어들어가서 같이 죽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까.
동생 동료에게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냐고 말했지요? 묻습니다. 귀 열고 눈 감고 들으십시오. 오래전이지만 제가 소방교육 받을 때 교육담당자가 이런 사례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상황들, 위급하고 긴급한 사고 때 처음 겪는 사람들은 사고력이 거의 반으로 줄 수 있고 횡설수설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했는지조차도 모르고 그 순간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고, 심지어는 화재 현장에서 소화기를 들고 와서 불 속에 그냥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관은 공부 많이 해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사람 아닙니까. 사실적인 부분도 왜곡하고 있을 수 있는 심리부분마저도 부정하십니까.
대부분 국민들을 장관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단 한번이라도 시민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냉혹한 사각의 링, 권투경기에서도 헤비급과 플레이급이 싸우는 경기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이상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와 싸우지 마십시오. 그 힘 가지고 힘있는 사람하고 정의를 위해 한번이라도 싸우십시오. 다시하번 묻습니다. 동생과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사과할 생각 지금도 없으십니까.
오늘이 동생 떠난 지 47일 되는 날입니다. 굳건하게 버티라고 저희 유가족에게 용기주시고 아파하고 눈물도 함께 흘리신 분들의 마음에 힘입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고 동생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겠다고 또 다짐을 해봅니다.
저희는 승리합니다. 동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함께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영상 녹취>